제국주의의 낙화(落花) 2022.09.21

by 김성국 posted Sep 21,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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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 가는 과거의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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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9일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장례식이 성대하게 거행되었다태양이 지지 않는 나라대영제국 군주 서거를 애도하기 위하여세계 각국의 정상 400여 명이 런던으로 모여들었고, 100만 명 이상의 조문객들이 연도를 메웠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윈저성으로 이어진 장례행진은 고색창연하고 화려하면서도 성대하고 질서정연했다왕실 직속 근위대와 기마대왕실해군 의장대각 군의 지휘부와 부대를 상징하는 군기들작위를 받은 귀족들과 퇴역 장성들이 모두가 옛날식 제복을 입고 장중하면서도 기괴한 로봇같은 걸음걸이로 군악대의 반주에 맞추어 행진했다지축을 흔드는 예포 포성과 뱃속까지 울리는 북소리에 맞춰 이어지는 로봇들의 행진은 천년 제국의 마지막 퍼포먼스였다엘리자베스 여왕의 딸 공주는 일흔이 넘은 늙은 나이 임에도 불구하고 왕실해군 예복을 단정하게 차려입고 행진 내내 고개를 꼿꼿하게 치켜들고 위엄있게 걸었다영국 왕실의 자녀들은 전통적으로 왕립해군(ROYAL NAVY)에서 복무하며 전쟁이 나면 최전선에 나가서 싸우는 전통을 지켜왔다.

 

 BBC의 장례행사 중계방송을 보면서 영국의 진정한 주인은 영국국민이 아니라 영국 왕실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인자한 주인의 죽음을 애도하는 수많은 하인이자신이 하인이라는 사실도 잊은 채 슬픔에 겨워 탄식하고 있는 격이었다영국은 아직도 세계최대의 식민지를 보유한 나라임에는 변함이 없다영국연방 (英國聯邦 , Commonwealth of Nations)은 캐나다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인도 등 과거 영국의 식민지였던 52개의 국가로 구성된 국제기구인데세월이 흐름에 따라 몇몇 국가들이 독립하거나 자치권을 갖게 되었지만그래도 영국 국왕을 중심으로 연방국가의 형식을 유지하고 있다이들 국가 중 12개 나라(앤티가 바부다(Antigua and Barbuda), 오스트레일리아연방(Australia), 바하마연방(The Bahamas), 바베이도스(Barbados), 벨리즈(Belize), 캐나다(Canada), 그레나다(Grenada), 자메이카(Jamaica), 뉴질랜드(New Zealand), 파푸아뉴기니독립국(Independent State of Papua New Guinea), 세인트키츠네비스연방(Federation of Saint Kitts and Nevis), 세인트루시아(Saint Lucia), 세인트빈센트그레나딘(Saint Vincent and The Grenadines), 솔로몬제도(Solomon Islands), 투발루(Tuvalu)는 영국 국왕을 자국의 군주로 인정하고 있다.

 

 영국이 세계를 지배하게 된 배경에는 대항해 시대부터 육성한 강력한 해군력을 바탕으로 그칠 줄 모르는 세계진출을 들 수 있다영국국민은 왕실의 명령에 따라 침략전쟁과 노예무역에 목숨을 바쳐 앞장섰고비어있는 섬은 거저 주어들이고미개한 국가들을 식민지로 복속시켜 그 식민지에서 막대한 재산을 착취하여 세계 최강의 부자나라를 이룩하였다. 18~19세기 산업혁명을 선도한 영국의 경제는 폭발적으로 발전하여런던과 지방 도시의 건물들은 화려하고 튼튼하게 건축되었다학문과 문화는 고도로 발달하였으며축구골프테니스배드민턴 등 지금도 유행하는 모든 종류의 스포츠를 창안하거나 변형 발전시켰다.

 

 사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가문은 원래 독일의 작센코부르크고타라는 작은 왕실의 후손인데, 1917년 엘리자베스의 할아버지 조지 5세 왕 시대에 독일과 인연을 끊고 영국의 윈저’ 왕실로 개명한 이후세계를 지배하는 명문 왕가로 발전하였다이런 왕정이 지금 이 시대에도 과연 존립할 가치가 있을까하는 의문이 드는 것은 비단 필자만의 의문은 아닌듯하다이미 영국연방의 몇몇 나라가 이번에 즉위한 찰스 3세 국왕을 지지하지 않거나영 연방에서 탈퇴할 것을 공공연하게 선언하고 있다영국 왕실에 무자비하게 착취당한 식민지인들은 내심 영국 왕실에 대하여 깊은 적개심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특히 아프리카 흑인 노예로 팔려간 그 후손들이 세운 나라들은비도덕적이고 비인간적인 영국인들의 만행을 결코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코미디처럼 요란한 제복을 입고 대영제국의 윈저 왕실은 건재하고 있다!’라고 외친 이번의 장례행사는거꾸로 악명높았던 제국주의 시대의 마지막 낙화가 되어 길거리에 흩날리고 있었다그 조문 행사장에 일본 국왕의 모습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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