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직장인 줄 알았는데... 현실은 '잠못드는 밤'

by 스피라통신 posted Jun 05,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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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매일경제>
 

 

사무실에서 윗사람에게 폭행을 당했습니다. 무자비한 주먹질에 입술이 터졌습니다. 장시간 이어지는 노동에 지쳐 쉬다 왔더니 직원들이 모두 볼 수 있는 게시판에 반성문 형식의 업무보고서를 올리라는 일방적인 지시가 떨어졌습니다. 압박과 모멸감을 견디지 못한 그는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했습니다. 2018년, 지금으로부터 3년 전 IT 업계 얘기입니다.

 

2018년 상황을 좀 더 볼까요. 그때 IT 업체 노동자의 자살 시도율은 일반 성인의 약 28배에 달했습니다. 당시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의원이던 이철희 현 청와대 정무수석 측이 마련한 'IT 근로자 대상 노동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IT 근로자 4명 중 1명은 주 52시간을 초과해 근무했습니다. 근로기준법상 법정근로시간인 40시간을 준수한다는 답변은 10명 중 1명(12.4%)에 불과했습니다.

 

응답자 절반 이상이 초과근로시간에 대한 보상을 받지 못했을뿐더러 회사가 직원의 근무시간을 확인조차 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IT 업체에서 야간수당을 받지 못하고 있단 답변은 전체의 52.6%였고, 초과근로수당을 근로기준법에 맞춰 지급한다는 답변은 5.4%에 그쳤습니다.

 

2018년은 '노조 불모지'로 여겨지던 IT 업계에 첫 노조가 설립된 해입니다. 네이버가 인터넷 업계에서 처음으로 노조를 설립했습니다. 카카오도 같은 해 노조를 만들었고 넥슨, 스마일게이트 등 게임 업계에서도 노조 설립 바람이 불었습니다.

 

3년이 지난 지금의 상황은 어떨까요. 카카오는 임산부에게도 초과근무를 요구하고 일부 직원들이 연장 근무시간을 회사 시스템에 제대로 입력하지 못하게 해 근로기준법을 위반한 사실이 최근 적발됐습니다. 일부 직원과 퇴직자에게 연장근로수당과 연차유급 휴가수당 지급을 미루기도 했습니다. 올해 초 직원 인사평가 방식을 두고 한 차례 논란을 겪으면서 카카오 직원들이 나서서 고용노동부에 근로감독을 요청한 겁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스마일게이트는 직원 10명 중 4명이 초과근무를 하고도 연장근로수당이나 대체휴가를 받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계약 기간이 아직 남은 직원의 책상이 빠진 사건도 있었습니다.

2021년 IT 업계는 '장밋빛 판교밸리'가 예상돼 왔습니다. 지난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비대면 수혜를 입었던 만큼 올해 초 업체에 따라 최대 2000만원의 연봉 인상이 이뤄졌고, IT 업체마다 보너스와 성과급·스톡옵션이 앞다퉈 결정됐습니다. 코로나19 사태로 직격타는 맞은 타 업계에서 보면 판교는 마치 딴 세상처럼 느껴졌죠.

 

그런데 사무실 모습은 3년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엎드려뻗쳐까지 시키는 직장 내 괴롭힘에 네이버 직원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습니다. 네이버 본사 로비에 마련된 추모 공간에는 '아빠 사랑해요 수고했어요'라고 쓴 자녀의 편지가 영정 대신 헌화대에 놓였습니다. IT 업체 노조가 다수 속한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조는 입장문을 통해 "IT 업계는 업무 특성상 장시간 근로와 상시적인 과로에 노출돼 온갖 고통을 겪고 있다"며 "일명 '갑질'로 통용되는 직장 내 괴롭힘과 스트레스까지 헤아린다면 IT 노동자의 고통과 부담은 더욱 크고 깊다"고 전했습니다.

 

지나친 성과주의를 비롯해 업계의 수평적인 조직문화가 오히려 일부에게만 권한을 몰아줘 위력으로까지 작용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수평문화가 아이러니하게도 특정 몇몇 관리자에게 지나치게 많은 권한을 부여해 견제가 쉽지 않게 된 겁니다.

 

특히 인사 권한은 성과급 등 인센티브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막강합니다. IT 기업의 급성장 이면엔 초기 멤버 등 회사 내 '성골'을 만들어내고 높은 인사평가와 인센티브를 위해 이들 일부의 무리한 '갑질'도 감내하는, 합리적이지 못한 조직문화가 자리하게 됐다는 겁니다.

 

제조업 등에 비해 직원들의 이직이 잦아 노조 설립 움직임이 그동안 활발하지 않았던 것도 기이한 기업문화 형성에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과거 버블(거품) 논란까지 일었던 IT 업계는 벤처붐을 타고 '고생 뒤 대박'이 가능한 업계로 인식돼 왔습니다.

 

대여섯 명이 모여 매일같이 밤샘 근무로 '열정'을 쏟다 한 방이 터지면 모든 걸 보상받는다는 인식이 있었던 거죠. 해외의 경우도 다르지 않아서 성공을 증명한 최고경영자(CEO)의 기이한 행동엔 침묵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를 비롯해 이제 고인이 된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에 대한 평가가 갈리는 것도 이 때문이죠.

 

하지만 성과 중심의 회사에서 직원 마음을 살피는 과정이 빠졌을 땐 제동이 걸립니다. 브레이크는 결국 시스템이 아니라 사람이 밟습니다. 이를 깨달은 해외 기업들은 대안 찾기가 활발합니다. 미국 빅테크 기업으로 처음 노조가 결성된 구글은 직원의 문제 적발 시 바로 직위를 해제하거나 퇴출시키는 '원스트라이크 아웃'을 실시하고 있죠.

 

네이버 본사 직원이 극단적 선택을 한 것과 관련해 고용노동부는 최근 관계자들을 불러 조사했습니다. 네이버는 외부 기관에 의뢰해 직장 내 괴롭힘을 투명하게 조사하겠다는 입장입니다. 3년 뒤 IT 업계는 어떤 모습이 돼 있을까요.

 

 

 

스피라TV 박동혁기자 icsof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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